1. 사실관계의 정리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담당하는 A는 같은 교회 성가대에서 반주를 담당하는 원고와 자신의 손자인 B 간의 혼인(이 사건 혼인)을 주선하였다.
A는 이 사건 혼인에 관한 상견례에 참석하여 원고에게 결혼이후 도곡동 소재 시가 332억 상당의 토지(이 사건 토지)를 증여하겠다는 말을 하였고, 피고 호텔의 대표이사 C 역시 B의 친족자격으로 참석하여 그 말을 들었다.
이후 원고 및 B는 피고 호텔과 결혼식장 대관 및 행사진행에 관한 용역 일체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위 계약에 따른 피고 호텔의 의무 중에는 원고에게 결혼식 당일 원고가 미리 선택하여 원고 신체 및 선호에 맞도록 조정이 완료된 특정 디자인 · 사양 · 규격의 웨딩드레스(이 사건 제1드레스)를 하자 없는 상태로 착용하게 할 의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피고 호텔의 한 피용자는 결혼식 당일 행사 시작이 임박한 시점에 과실로 이 사건 제1드레스를 훼손하였고 위 피용자의 상급자인 피고 호텔의 다른 피용자는 위 훼손사실을 은폐한 채 이 사건 제1드레스와 디자인 · 사양 등은 동일하나 규격이 상이한 다른 드레스(이 사건 제2드레스)를 마치 이 사건 제1드레스인 것처럼 속여 원고로 하여금 입게 하기로 마음먹고 그대로 실행하였다(이상 위 두 피용자들의 행위를 합하여 이 사건 의무위반).
이후 원고는 신체에 들어맞지 않은 이 사건 제2드레스를 착용한 채 결혼식을 진행하였고 신랑 · 신부 행진 도중 위 드레스가 흘러내려 원고의 등 부위 맨살의 상당부분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는데(이 사건 사고), 그렇게 노출된 원고의 등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도안의 문신(이 사건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A는 위 사고 이후 원고에게 그 등에 새겨진 불교 문신의 존재와 관련해 크게 실망한 나머지 파혼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이에 이 사건 혼인의 양가 관계는 사실상 파탄되었다.
2.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변경된 청구의 요지
이 사건 사고를 야기한 이 사건 의무위반은 피고의 고의 내지 과실에 기한 채무불이행이고, A는 원고에게 결혼 이후 이 사건 토지를 증여하기로 미리 약속하였으나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 등에 있는 이 사건 문신을 보게 된 연유로 파혼을 거론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고는 위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이 사건 토지를 얻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 그리고 피고 호텔의 대표이사 C는 A가 원고에게 위 증여 약속을 할 당시 이를 직접 들었고 따라서 위 손해의 발생여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토지의 시가 상당액인 332억원을 배상하여야 한다.
3. 검토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책임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고의 내지 과실에 기한 채무불이행, 손해의 발생, 손해와 채무불이행 사이의 인과관계가 각 인정되어야 하고(민법 제390조), 이때 채권자가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손해의 범위는 통상의 손해를 원칙으로 하고 특별한 손해는 채무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것에 한한다(민법 제393조).
위 원고 소송대리인의 주장 중 이 사건 의무위반이 피고의 고의 내지 과실에 기한 채무불이행이라는 논지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위 주장 중 ‘손해의 발생’ 및 ‘인과관계’의 구비 사정이나 위 이 사건 토지의 시가 상당액이 피고가 알고 있었던 특별한 손해로서 배상되어야 할 범위가 된다는 논지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수긍할 수 없다.
1) 손해가 발생한 것인지 여부
채무불이행책임이 성립하기 위하여 발생을 요하는 채권자의 ‘손해’는 현실적 · 확정적으로 발생한 손해여야 하고, 따라서 장래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된 소극적 손해의 경우에는 그 장래이익이 현실적 · 확정적으로 발생할 예정이었던 사실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A가 상견례 자리에서 결혼 이후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를 증여하겠다고 말했다’라는 사실만으로 A가 혼인성립을 정지조건으로 이 사건 토지를 증여한다는 의사를 구체적 · 확정적으로 표시한 법률행위를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설사 증여계약이 성립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서면에 의하지 않은 이상 A는 얼마든지 임의로 이를 해제할 수 있는바(민법 제555조), 원고가 위 A가 했다는 말에 근거하여 관련된 이익을 실제로 전부 취득할 것인지 여부는 오로지 A의 일방적인 의사에 달려있는 것으로 소구(訴求)하여 관철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말을 들었을 뿐이라는 원고에게 장래 이 사건 토지라는 재산을 얻을 이익이 현실적으로 확정된 상태였다고 볼 수는 없고, 어떠한 사건으로 인하여 원고가 그와 같은 이익을 상실하게 된 것이라는 법률적 판단도 가능하지 않다.
2) 채무불이행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
채무불이행책임이 성립하기 위하여 존재를 요하는 채무불이행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자연과학적 의미에서의 인과관계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며 발생한 불이익을 행위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규범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원고의 손해는 이 사건 사고 이후 A가 원고에게 실망하여 파혼을 거론함으로써 구체화 되었다는 것이므로, 위 원고의 실망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주된 원인이 무엇이며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여부를 고찰해야 한다.
그런데 A가 원고에게 실망한 원인은 원고의 등에 새겨진 불교 문신을 보고 원고를 손자며느리로 삼고자 했던 절대적인 동기로서 원고가 진지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믿음이 완전히 무너진 사정이 원인된 것이지, 원고가 입고 있던 이 사건 제2웨딩드레스가 흘러내린 사건 자체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이 점은 피고의 같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같은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원고의 등에 불교 문신이 없었을 경우에는 A가 위 사고를 이유로 원고에게 실망을 하거나 파혼을 거론할 개연이 결코 없었을 것인 점을 생각해보면 분명하다.
그렇다면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위 손해는 A가 언제라도 정을 알게 될 경우 실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형성 · 유지한 채 이를 은폐하고 A에게 실제와 다른 믿음을 부여하여 온 원고의 책임으로 귀속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한 것이지, 위 문신의 존재사실 등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는 피고에게 A의 실망과 관련된 결과의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피고의 관련 채무불이행과 A의 실망 사이에는 일단 법률적 의미에서의 인과관계는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
3) 위 손해가 피고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특별한 손해인지 여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채무불이행 당시 관련 손해의 발생에 기여한 아래의 특수한 사정들을 전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그로 인한 원고의 손해는 민법 제393조 제2항의 특별한 손해로 상정되어 인과관계 역시 들여다 볼 여지가 있다고 볼 수는 있다.
① A가 원고에게 결혼 이후 이 사건 토지를 증여하기로 약속한 사실 ② A에게 이 사건 혼인을 파탄시킬 수 있는 사실상의 권능이 있는 사실 ③ A는 원고가 진지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고 그것이 원고를 손자며느리로 삼은 절대적인 동기가 된 사실 ④ 원고의 등에 불교 문신이 새겨진 사실 및 ⑤ A는 이를 알지 못하는 사실 ⑥ A가 어떤 경위로든 위 불교 문신을 보게될 경우 A에게 크게 실망할 것인 사실 및 ⑦ 위 실망은 A가 이 사건 혼인의 파탄을 의욕할 만큼의 중대한 사유가 될 것인 사실 |
그런데 피고가 관련 손해의 발생여지를 알고 있었다는 점에 관한 원고 소송대리인의 논지는 위 ①의 사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 뿐 피고가 나머지 사정들을 알았다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은 전혀 주장조차 하지 않고 있고, 상식적으로도 피고 호텔의 관련자들이 특정 타인의 구체적 내심의 내용을 포함한 위 사정들 전부를 알 수 있었을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는 민법 제393조 제2항 소정의 특별한 손해의 범위로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인과관계를 논하여야 할 필요도 없다.
4. 사족
위 원고 소송대리인은 그것이 유리한 전략이라는 판단 하에 재판도중 청구액을 332억원으로 변경하는 소송행위를 강행하기까지 한바,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1억원 상당의 인지액을 납부하여야 하고, 위와 같이 원고는 청구 중 전부에 준하는 상당부분을 패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위 청구가 계속 유지되어 전부패소 할 경우 원고는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 별표에 의해 계산할 때 피고에게 (심급당) 1.7억원 상당의 소송비용을 부담하여야 할 처지에 놓인다.
피고측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무리한 청구변경이 있고 원고에게 집행할 자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상 소가 대비 극히 과소한 위자료 등 명목에 관한 일부패소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후 이루어질 원고의 소취하에 부동의하는 등 계속 위 청구를 유지하게 하여 확정판결을 받는 것이 도리어 유익한 결과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 원고 소송대리인의 청구변경 강행은 소송 측면으로만 보면 의뢰인에게 무익하거나 오히려 해가되는 행위였다고 생각된다.
2022. 7. 13.
변호사 이승훈 작성
공개된 드라마 중 허구의 사건이
실제 대한민국의 민사재판에서 발생했을 경우를 상정하여 작성한
변호사 이승훈의 개인적 소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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